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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龍淵)공공녹지공간

​​

Jongnam Shon.    

#0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녘 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 어느 소설의 첫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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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볍다. 가볍게 집을 나섰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의무감보다는 화창한 날의 공기내음을 맡길바래서인지 가볍다. 봄이 온 것이다. 언제나처럼 과거의 봄이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걷는다. 가볍다. 그리어렵지 않게 주차할 곳을 찾았다. 제주에서도 이젠 흔치않은 일이다. 전국방방곳곳 이제 주차하기는 대사(大事)이다. 동한두기 근처 말끔히 복개된 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가볍다. 그리고 걷는다. 한 시간정도는 걸어볼량으로 다시 걷는다. 

 

역시 제주하면 바다지. 본능적으로 동한두기 해안가 쪽으로 향한다. 바다가 보이기 시작해 좋다. 가볍고 시원해서 좋다. 아직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좋다. 아직은 이른 봄이다. 

 

어떤 장소를 찾아야할까? 갑자기 엄습한 의무감. 올레같은 골목을 뒤져봐야겠다. 골목을 이리저리 휘졌기 시작했다. 왔던 길을 세번쯤 다시 들어섰을때쯤 살짝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오늘할일을 내일로 미루려던 찰나 널찍한 도로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낮은 언덕을 가로질러 내어낸 길이다. 용한로다. 용연계곡 옆 용한로라... 도로양측으론 언덕을 깍아지른 높은 옹벽이 있다. 이왕나온거 한 시간은 걸어봐야지하는 의무감 때문인지 용한로 옹벽윗길을 오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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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벽윗길 초입에 서있다. 생각보다 높다. 문득 저길을 오르면 어떤 보상이 있어야 할 듯한 높이다. 옹벽 위 보행로 옆으로는 또다른 돌담옹벽과 블럭조담이 이어져있다. 처음 시작된 담에는 용연계곡의 모습이 벽화로 알록달록 그려져도 있으며 돌담옹벽으로 이어져있었다. 이 언덕길을 반쯤 오르면서 언덕위쪽 모습이 언듯언듯 보이기 시작했다. 밭담너머 유채꽃봉오리들이 살랑살랑 먼저 보이기 시작했고 언덕끝에 다다를때즘 어느새 돌담옹벽은 사라지고 밭담너머 꽃밭이 펼쳐졌다. 유채꽃과 보랏빛의 안개꽃 같은 나물꽃의 모습이 장관이다.    

#2

 

언덕을 가로질러 만든 도로인 저 용한로는 사실 내가 외가댁을 갈때면 항상 차를 타고 지나곤했던 도로이다. 용한로는 작은 언덕을 깍아내고 가로질러낸 도로이다. 나는 어릴적 탑동 근처 무근성에 살았었는데 당시 이 도로에 대한 기억은 없어 자료를 뒤져보니 90년을 전후해 개통된 도로였다. 아마도 탑동매립이 시작되고 그곳으로의 차량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과감히 언덕을 깍아 만들었을 것이다. 깍았다는 표현보다는 “언덕을 토막 내었다”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지체없이 언덕을 토막내어 개통한 도로양측은 약 6미터이상 높이의 옹벽이 있고 그 옹벽위에는 보행 언덕길이. 그리고 그길 측면으로는 다시 2미터높이의 돌담옹벽이 있어 10미터는 족히 될만한 언덕을 절토해 만든 도로가 용한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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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368개의 오름이 있다고 하는데 비고(比高) 200미터가 넘는 높은오름이 있기도 하지만 몇 십미터 또는 6미터의 작은오름(알오름, 새끼오름)도 있다고 하니 저도로만 아니었다면 저 언덕도 당당히 ‘제주오름’목록에 ‘등재’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이드니 왠지 모를 측음함이 들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단 한번도 저 ‘길’은 내게 ‘길(보행로)’이었던 적이 없어서인지 저 높은 옹벽 위의 길을 성큼성큼 오르게 되었는데 언덕 끝에는 제주시에서 조성관리하고 있는 공공녹지공간이 있었다. 녹지공간은 낮은 밭담으로 둘러쳐져있고 주로 유채꽃과 나물꽃으로 조성되어있다. 밭담은 지형에 순응하여 낮은단으로 구성 되어있으며 용담공원이 녹지공간 옆에 면해있다. 용담공원과 녹지공간은 용연수변산책로와 이어지며 용연다리, 동한두기, 서한두기로 이어지는 친수공간으로 조성되어있는 장소였다.

 

내가 몇차례 답사했을때를 떠올리면 용담공원과 녹지공간은 해안가에서 용연다리로 이어지는 올레길코스와는 다소 떨어져 있어서인지 외지인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지역주민들이 빈번히 찾는 장소였다. 산책을 하는 이, 앉아 쉬며 담소를 나누는 주민들, 가벼운 운동을 하는 이들의 모습도 자주보였다.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찾고 애용하는 장소였으며 그 장소의 배경인 꽃밭과 그 밭담, 그리고 공원수목들이 용연수변공간들과 함께 도심내 공원이상의 장소성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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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장소는 한동안 서측으로는 용연계곡, 그리고 동측으로는 언덕을 깍아만든 도로인 용한로에 의해 인근마을로부터 고립된 버려진 장소였으며 무분별하게 사유화되기도 했던 장소이다. 용연(계곡)과 용한(로)에 의해 잊혀진 장소.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지체없이’ 언덕을 토막내 내어낸 도로에 의해 무분별한 도시의 확장까지는 막을 수 있었으며 그 원풍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원과 꽃밭, 수변산책로로 구성된 현재의 열려있으며 다채로운 녹지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3

 

이제 우리도시에서는 버려진 장소에서만 꽃이 피게 된 것일까.. 그래도 언덕을 토막내 만든 도로 위를 무심히 지나치는 차량들과의 대비 때문인지, 아니면 이른 봄인지 한창인지모를, 봄날의 화창한 하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 장소가 좋다. 걷기 좋다. 유독 저 언덕길을 올라 이 장소에 다다를 때면 더욱 좋고 가벼워진다. 찰랑거리는 저 꽃들처럼 가볍다. 걷고 싶은 동네, 걷고자 하는 도시공간이 옆에 있어 마냥 좋고 설렌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장소가 하나하나 사라질 때면 더욱 아리고 아쉽다. 그래도 아직은 이런 장소들을 보듬고 있는 제주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나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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